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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까지 그들을 17번 만날 수 있었다.

조엘 코엔은 1954년생, 에단 코엔은 1957년생이다.  

   

2017년 107번째 영화


1. 분노의 저격자 Blood Simple (1984) : 아무도 모른다.


모두 다 아시는 객담 먼저. 본편의 국내 통용 제목이 <분노의 저격자>인 것은 세신에서 1990년 5월에 출시된 정품 비디오에

따른 결과이다. 그 시절 부산에서 거주하던 입장에서 이 비디오는 극히 희귀하여, 지금은 폐업했을 영화마을 남천점에

한장 있는 것을 봤다. 이후 청계천 등지에서 조잡하게 만든 복사본이 풀리기 전에 이 비디오는 희귀작으로 나 역시도 서울의

모 비디오 판매점에서 다른 비디오와 교환해서 소장한 기억이 난다. 94년도 즈음에 본편을 정품 비디오로 감상했으니, 이미

23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바톤 핑크> 이후 코엔 형제의 위상을 감안하자면 희귀비디오로서 최적화된 작품이 본편이었다.


두 가지 논점은 도무지 거부할 수 없다. 첫번째는 오프닝의 나레이션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사립탐정이다.

즉, 주요 인물인 두 남성인 마티, 레이가 아니며 더더군다나 여성 애비도 아니다. 이들 3인을 제외한 인물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를 감안하더라도 오프닝의 목소리가 왜 사립탐정이어야하는지는 중요한 지점이다. 작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카메라가 덩그러니 도로를 비추고 곧 익스트림 롱숏으로 원경을 담아낼 때 그 목소리는 사실상 영화를 예고한다는 명백한

사실보다 세계를 지배한다는 편이 옳바른 판단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나레이션은 코엔 형제가 세상에 고하는 일성이다.


당연히 그 일성은 30살, 27살 두 형제의 세계관이자 당대에 대한 인식론이다. 여기에 관객은 84년도라는 시간을 포갤 수 있다.

되새기지만, <람보 2>, <코만도>가 개봉된 것이 바로 다음해 1985년도이며 레이거노믹스의 위력 아래 아직 고르바초프가

도착하지 못한 시기이니 나레이션의 '러시아...' 에 대한 이념적 조롱은 이를 기반으로 하는 듯 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장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인데 이는 현재까지 약 23 여년간 코엔 형제의 세계 내 중심 기조인 아이러니와 잇닿아있다.

협력에 의한 명확한 결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의도대로 되지 않으니 해피, 언해피의 결과 따위는 핵심이 아니다.


사립탐정의 나레이션이라는 논점으로 돌아가자면, 그가 본편에서 최초의 사실상의 살인 시도와 또다른 명확한 저격 살인

( 애석하게도 이 행위가 본편의 제목처럼 '분노의' 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분분한 해석이 첨부되어야할 듯 하다.)과 마지막

살인 시도 모두를 행하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즉, 사실상 본편의 죽음들은 모두 사립탐정 로랜에게서 비롯된다.

물론 해당 사건의 시작은 마티의 청부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 청부를 뒤집기 서사로 아이러니를 창출한 몫은 나레이션을

담당한 이만이 행할 수 있는 권능이다. 즉, 사립탐정 로랜이야말로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의 창조주다.


이쯤되면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가 바로 그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지점이

있는데, 이는 일종의 진전이자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편의 사립탐정 로랜은 나레이션이라는 입장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은퇴를 앞둔 보안관 벨을, 살인이라는 입장에서는 안톤 쉬거로 이분화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편의 사립탐정은 적어도 현상적으로 제거될 수 있는 인물이고 실제로 여성 애비에 의해서 죽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술한 바처럼 사립탐정의 조롱 섞인 마지막 말에서 감지되듯이 살인의 종결이 그 자체로 해제가 아님은 불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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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사립탐정은 자신이 나레이션한 세계를 스스로 살신성인하여 구축 증명한 것이다. 실제로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일맥관통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문제는 그 안에 사립탐정 자신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총격한

마티의 시체가 레이에 의해서 땅에 묻혀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도 사건의 관계자인 애비와 그의 연인 레이를

제거하려한다. 하지만,  그는 애당초 자신이 사건 현장에 두고온 자신의 라이터를 찾아내지 못한다. 라이터 자체는 장르의

간단한 맥거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물건이지만, 외면의 단어 'Lover'가 올가미 로프에 갇혀있음조차 무시할 수는 없다.


본편은 기본적으로 치정 스릴러 살인극이고, 이는 곧 불륜으로부터 시작된다. 불륜이란 하나의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를

​선택한다는 의미인데, 이 과정에서 전 세계의 공적인 법칙성이 후 세계의 사적인 육체성에 파괴된다. 이같은 교환을 넘어선

대체의 갈등과 투쟁이야말로 장르를 이끌어가는 감정의 동력인데, 본편은 이를 거의 무시하는듯이 방기해버린다. 그로부터

본편의 두번째 논점이 제기된다. 왜 본편은 저속 운행하는가? 한마디로 장르적 긴장이라는 속도감을 활용하지 않는다.

97분에 달하는 분량을 사실상 30 여분을 제거한 이후 중편으로 연출한다고 해도 전체 서사의 흐름은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답답해지고 싶은 것이다. 세계의 불확실성으로서의 아이러니를 구축함에 있어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의

진공화를 수행한 바가 속도감의 제어로서의 실종이다. 가령, 초반부 에바를 둘러싼 남편 마티와 불륜남 레이, 사립탐정의

캐릭터 소개가 종료된 이후 카메라가 오직 발의 움직임에 맞춰 바닥에 바짝 붙어 따라가는 시퀀스에서 마티의 주점 바텐더인

모리스와 그의 여인을 등장시킬 이유를 질의한다면 이는 곧 일종의 시각적 교란을 위한 불필요한 서사의 추가로 응답된다.

이같은 서사 중심과 관련없는 낯선 타자의 동선을 따라나서는 시퀀스는 곧 애비의 애견이 복도를 가는 모습에서도 반복된다.


이같은 장면들은 분량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모리스, 애견으로서의 그들이 서사 밖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내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음모의 전술이 된다. 이로부터 속도는 가속되지 못하고 드문드문 발목지뢰밭에 갇혀 경계의 자세를 취한다.

즉,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에 어울리는 시간관은 결코 직선이 아닌 지체되는 감속과 무단 정지의 골격이 된다.

나레이션의 오프닝 이후 어둔 밤 도로를 운행하는 자동차가  애비의 직감으로 갑자기 정지되는 사유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날개에 의해 프레임이 가려거나 레이와 애비가 서로에게 사건의 진상을 말하지 못하는 것도 같다.

기대했던 장르의 속도감은 저속되고 나래이션은 미리 아무 것도 밝혀질 수 없다라고 귀뜸한 이후에 잔여물은 무엇일지는

명백하다. 진실을 알 수 없는 이들은 죽어야하고 남겨진 여성 애비 역시 결코 생존이라는 해피 엔딩의 구역에 초대되지 않는다.

그들은 마티가 낚시한 4마리 생선과도 다를 바 없다. 아마도 관객 입장에서의 전리품은 마티가 에비의 입을 막고 집 밖으로

나올 때 멀리서 카메라가 바닥을 따라 급속 진행하는 모순된 속도감이나 마티의 사무실에서 사건의 진상을 추정한 에바의

얼굴 클로즈업 뒤 배경이 뒤바뀌면서 공간이동이 되는 정도의 충직하면서도 매혹적인 영화 기법일지도 모르겠다.

엔딩으로 세면대 배관 파이프의 물방울이 떨어질듯말듯 하였다가 결국 떨어지는 장면도 흡족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객은 본편이 코엔 형제의 첫번째 영화적 발화임을 간과하면 안된다. 불가지론의 선언 이후에 세계의 전환으로의 불륜이

있었고, 의도적으로 늦춰진 속도와 바닥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무의미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모순, 결국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라이터라는 맥거핀 아닌 맥거핀이 있다. 그리고 영화는 결국 '아무도 전체를 모른다'라는 영화 밖 감독의 전지적

신적 존재를 인증함으로서 이제부터 들려줄 이야기의 무대 뒤 설계자라는 위치에 대해 첫 의문문을 던지게한다. 이는

제목처럼 '간단한 살인'으로 처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건 모든 서사의 숙명적 한계이면서 공포이기도 하다.



<블러드 심플>은 불가지론의 좌표에서 생성될만한 불륜의 매혹적인 파탄 결과물로서의 치정 스릴러이며

전혀 부차적인 단락에서의 속도감의 모순성과 알 수 없는 세계 바깥의 설계자에 대해 질의하게 되는 진공의 내부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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